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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야. 난 이곳에서 나갈 거야.”

 

 

빈이는 별안간 나에게 큰 포부를 밝혔다. 너무 허무맹랑하여 나는 처음엔 빈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눈만 멀뚱히 뜨고 있으니 빈이가 몇 마디 덧붙였다.

 

 

“여기서 나가 자유로워질 거야. 실험 때문에 아프지도 않고, 훈련받느라 힘들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 거야.”

 

 

나는 그제야 빈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도 허무맹랑한 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발터에서 탈출하겠다니. 10년 가까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지 않은가.

 

 

“네가 없으면, 난 어떡해?”

 

 

빈이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여태 의지할 사람이라곤 서로뿐이었기에 나로서는 응당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아이, 무슨 소리야. 너도 같이 가야지!”

“나도?”

“그럼. 나 혼자 어떻게 나가. 들키면 같이 싸워야지.”

 

 

빈이는 눈을 빛내며 그렇게 대답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나까지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게 황당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빈이의 계획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할 수는 없었다.

 

 

“난 가지 않을래.”

“…차은우.”

“너도 포기해, 빈아.”

 

 

실패하기라도 하면 곱게 죽지 못할 계획임이 뻔했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누가 듣기라도 할까 싶어 두려울 정도였다. 성공한다고 해도 평생 쫓기는 신세가 될 텐데, 난 빈이를 지켜줄 자신이 없다.

 

기대감에 차 반짝이던 빈이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는 것을 보자니 미안해졌다. 참 오랜만이었는데, 그런 표정. 그래도 여기서 고분고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말 잘 듣는 오드를 적어도 죽이지는 않으니까.

 

삐친 듯 말이 없던 빈이는 자신의 침대에서 나를 등진 채 누워 잠든 듯했다. 나는 그런 빈이의 등에 대고 "빈아, 좋은 꿈 꿔." 하고 나지막이 인사했다. 꿈에서라도 네가 원하는 인생을 보기를 바라.

 

 

 

-

 

 

 

내가 원하면 바람이 불었다. 아마 태어날 적부터 가진 능력인 것 같다. 마음먹으면 그 바람으로 무언가를 밀어내는 것까지 가능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 능력을 쓰지 않도록 신신당부하셨고, 나는 말 잘 듣는 아들이었다. 그런 우리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부모님을 찾아와 나를 요구했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은 내가 어리지 않았더라도 큰 액수라고 생각했을 만큼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내 능력을 알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부모님은 어처구니없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고, 며칠 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곳에 오게 되었다.ㅡ지금에 와서 추측해보건대 이들이 부모님을 죽인 게 아닐까 싶다.ㅡ 그때 내 나이가 여덟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년 후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빈이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빈이의 부모님은 이곳에서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고 순순히 빈이를 넘긴 모양이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우리는 같은 처지가 되었고, 비슷한 계열의 능력을 가진 우리는 같은 방에 배정되어 15년을 동고동락했다. 이곳에선 인간이라면 보통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을 '오드'라고 칭했다. 그리고 오드들의 능력을 실험하고, 훈련시켜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오드들을 병기로 만들기 위한 기관인 이곳은 '발터'라고 불리었다. 빈이와 내가 열한 살일 때, 오드 중 한 명이 탈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오드는 도중에 붙잡혀 몇 날 며칠 동안 한계치를 넘는 실험을 당하다 결국 사망했다. 그 후 어떤 오드도 발터에서의 탈출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

 

 

 

다음 날, 자고 일어나서도 아직 부리 입을 내밀고 있는 빈이가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빈이의 큰 결심을 저지한 내가 웃을 입장은 아니었지만, 빈이가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빈이는 그런 나를 한 번 흘기더니 야외 실험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나를 피하기 위해 그렇게 싫어하는 곳에 씩씩하게 들어가다니. 어지간히 내가 미운가 보다 싶었다. 어떻게 빈이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좋을지 평화로운 고민을 했다.

 

이곳이 발터인 탓일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의 실험 내용을 전달받은 우리는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비행능력을 가진 오드의 저항력 테스트. 실험체는 O-A11과 0-A12. 나와 빈이었다. 쉽게 말해, 내가 바람으로 빈이가 날지 못할 정도로 공격해야 하는 실험이었다.

 

 

“전… 못해요. 어떻게 빈이한테….”

 

 

내 말에 대꾸하는 연구원은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독촉할 뿐이었다. 선선한 정도의 바람을 만들어 내면서도 조마조마해 하며 빈이가 무사한지 살폈다. 연구원이 강도를 높이라고 명령했지만 나는 이것이 한계라고 답하며 명령에 불응했다.

 

내가 일부러 미미한 바람만 만들어 내는 것을 눈치챈 연구원이 옆에 있던 전기를 다루는 오드에게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경고 한 번 없이 체벌을 받은 나는 깜짝 놀라 능력을 조절하지 못했고, 딱딱한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빈이가 마치 슬로모션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빈아!”

 

 

난 절규하듯 빈이의 이름을 외치고 내 눈을 가려버렸다. 빈이에게 달려가 빈이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한심하게도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 머리부터 떨어진 것 같았는데. 혹시라도 빈이가 죽었을까 봐, 내가 빈이를 죽였을까 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O-A12 중상. 처치 요청합니다. 이 와중에도 빈이를 이름이 아닌 코드명으로 부르는 그들이 미치게 미웠다.

 

 

 

-

 

 

 

빈이는 응급처치를 받고 사흘 내리 의식을 찾지 못했다. 병원이 아닌 우리의 방에 누워있는 빈이를 의사가 하루에 한 번 확인하러 올 뿐이었다. 빈이의 능력은 공격성이 없고 자신의 몸을 띄우는 게 고작이었기에 발터에선 빈이의 생사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이럴 거면 빈이를 발터에서 내보내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빈이가 깨어나지 못하는 내내 눈물샘이 마르고 닳도록 울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 수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우느라 일상생활을 소화하지 못하고 훈련에까지 지장이 생기자 첫날엔 이해해주던 직원들도 슬슬 짜증을 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빈아. 내가 미안해….”

“…”

“우리 나가자. 네 말대로 하자. 포기하라고 해서 미안해. 내가 멍청했어. 우리, 나가서 다신 이런 일 겪지 말자.”

“…진짜지?”

 

 

눈물에 잠겨 익사할 것처럼 사흘을 우니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빈이의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앉아 고개를 숙이고 짓무른 눈을 끔뻑이며 쇳소리로 중얼거리는데, 별안간 빈이가 대답을 해왔다.

 

 

“빈아! 일어난 거야? 괜찮아?!”

“약속 한 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오는 빈이에게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슬픔의 눈물샘과 안도의 눈물샘은 따로 있는가 보다. 평생치의 눈물을 쏟아낸 줄 알았는데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빈이가 힘없는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고, 나는 빈이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너를 잃을 뻔하고서야 결심해서 미안해.

 

 

 

-

 

 

 

빈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탈출 루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오래 발터에서 살면서도 이곳의 구조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발한 생각은 딱히 나오지 못했다. 오드들의 자유행동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실험장과 훈련장에 가는 길밖에 알 수 없었고, 그 길에 바깥과 통하는 출입구는 없었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고, 언제 들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르는 곳들을 헤매고 있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결국 결론은 창문이었다. 제3실험실로 가는 길에 꽤 넓은 홀이 있는데, 그곳의 벽에 달린 창문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창문이었다. 오드들의 탈출을 예방해야 했지만 내부의 공기 순환 역시 이루어져야 했기에 최소한의 창문만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고, 그 창문은 도어록처럼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장치가 달려있었다. 천장이 높은 그곳의 꽤 천장 가까이에 달린 그 창문은 나보다 비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빈이가 깨기로 했다. 무엇으로 창문을 깰 거냐는 내 질문에 빈이는 웬 비상용 망치를 꺼내 보이며 킥킥거렸다. 어디서 난 망치냐고 물으니, 야외 훈련장에 직원의 차가 들어왔을 때 슬쩍했단다.

 

 

“나는 뭘 할까?”

“너는!”

“응.”

“망을 봐.”

“…그거면 돼?”

“아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빈이는 내가 못 미더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으나 빈이의 얼굴이 너무 해맑아 어느새 나까지 덩달아 웃고 말았다. 날짜는 빈이가 다시 실험이나 훈련을 받으러 나가기 하루 전. 다시는 실험이나 훈련을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냥 그렇게 정했다. 우린 그날을 기약했다. 

 

 

 

-

 

 

 

“O-A12. 회복이 거의 완료되었으니 내일부터 훈련장에 나오도록 해.”

 

 

빈이가 부상을 입은 후로 2주쯤 지났을 때, 의사와 함께 우리의 방에 찾아온 직원 한 명이 말했다. 그 말에 빈이와 나는 신호를 담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늘 밤이야.

 

 

“알겠습니다.”

 

 

빈이는 떨리는 목소리와 긴장을 감추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의사와 직원이 방을 나가고, 한동안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막상 죽음 또는 자유 둘 중 하나가 될 미래가 눈앞까지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빈이었다.

 

 

“떨린다, 은우야.”

“괜찮을 거야.”

 

 

빈이의 가슴팍에 얹어진 빈이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쳐 얹었다. 내 손까지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격하게 뛰는 빈이의 가슴은 내 가슴과 다를 바 없었다. 괜찮을 거라며 말하는 나 역시 한껏 긴장한 상태였으니까.

 

서로 감정이 있었음에도 친구 이상의 관계에서 하는 스킨십은 일절 하지 않았던 우리는 하필 지금 입을 맞추고 혀를 섞었다.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아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언젠가 상상해 보았던 첫 키스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고,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첫 키스 후 오히려 진정할 수 있었다.

 

 

 

-

 

 

 

밤이 되고, 주간에 근무한 직원들과 야간에 근무할 직원들 사이에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느라 발터가 한산해지는 타이밍에 우리는 방을 나섰다. 빈이는 꽤 들떠 보였다. 최근 며칠 사이 빈이의 1년 치 미소는 다 본 것 같다. 아이처럼 화사하게 웃는 빈이는 반짝반짝했다. 연구원들은 전부 멍청했다. 분명 너는 이렇게 빛을 내는 아이인데, 너에게서 고작 비행의 능력밖에 찾아내지 못하다니.

 

살금살금 홀에 도착한 후, 빈이는 훔친 비상용 망치를 꺼내 들고 몸을 띄워 창문에 다가갔다. 빈이가 비장하게 숨을 들이 마시고 창문을 내려쳤다. 꿈쩍도 않는 창문에 빈이는 조금 당황했고, 몇 번을 더 힘주어 망치로 창문을 내려쳤다. 쾅쾅 하는 소리가 조용한 홀에 울려 퍼졌다.

 

 

“빈아,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

“어쩔 수 없어. 이게 평범한 창문이 아닌가 봐.”

 

 

빈이가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창문을 내려쳤을 때, 창문에 꽤 큰 균열이 생겼고 동시에 발터가 떠나가라 경보음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 놀랐지만 발터의 철저한 보안은 예상했었기 때문에 빈이는 창문을 깨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빈아, 서둘러! 내가 할까?!”

“조금만 더…!”

 

 

멀리서 직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홀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들을 향해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들은 벽에 세게 부딪힌 후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작정하고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저들은 오드가 아니고 우린 저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는데 평생을 당하기만 해야 했던 우리의 인생이 너무 부당하다고 여겨졌다. 드디어 창문을 깨어낸 빈이가 나를 데리러 바닥으로 내려왔다.

 

 

“거기까지 해.”

 

 

경보음이 멈추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리는 잠시 굳어버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이 사람과 마주하는 상황만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으니까. O-F01. 남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오드 중 가장 강했으며, 13년 전 탈출을 시도하던 오드를 잡아온 당사자다. 발터가 오드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무력이 되어주는 오드. 발터에 오기 전, 서커스단에서 감금과 학대를 당하던 그는 발터가 자신을 '구조'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발터에서 당하는 일도 감금과 학대일 뿐인데, 서커스단에서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는 발터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보였다.

 

 

“준모 형. 우리 보내 줘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너네는 그간 보아온 정이 있으니까 지금 방으로 돌아가면 다치게 하지는 않을게.”

“…저흰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네. 발터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잖아. 그뿐이야?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주고, 국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고.”

“그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에요. 발터는 우리를 실험 쥐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거라고요.”

“네가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뭘 모르네.”

 

 

빈이는 O-F01에게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역시나 그는 불통이었다. 애초에 그를 설득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자진하여 발터의 개가 된 그의 입장에선, 우리보다 발터에게 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와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그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손바닥을 펼치고 빈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내 시선은 깨진 창문을 향해 있었다. 내 의도를 눈치챈 빈이가 정색하고 나를 저지하려 했다.

 

 

“차은우. 뭐 하는 거야.”

“빈아. 넌 꼭 여기서 나가.”

“하지 마. 하지 말랬어!”

“네가 말했던 대로 살아. 실험 때문에 아프지도 않고, 훈련받느라 힘들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같이 가자고 했잖아! 네가 없으면, 난 어떡하라고!”

 

 

나는 울기 직전의 빈이에게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빈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웃어 보였다. 내가 능력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빈이의 몸이 깨진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멀리 날아갔다. 높게 띄웠으니까 빈이의 능력이라면 다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눈물겨운 신파네. 어차피 쟤도 곧 내가 잡아 올 거야.”

“그렇게는 못 하실 거예요.”

“O-A11. 넌 한 번도 테스트에서 나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적이 없었지.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오만함에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확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했다. 빈이를 다시 잡아올 거라는 그의 말이 내 각오를 더 단단히 했다. 오드에겐 경우에 따라 약점이 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가 다칠 수 있다는 것. 이 점을 이용해서 바람인 내가 불인 그를 상대해 볼 생각이다.

 

 

 

 

 

*

 

 

 

 

 

타의로 높게 날며 발터에서 빠져나오니, 발터가 한눈에 보였다. 이건 내가 바라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은우와 함께 나오고 싶었고, 실패하더라도 은우와 함께이고 싶었다. 준모형 많이 강한 오드인데, 은우가 무사히 뒤따라 나올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잠시, 큰 폭발음과 화염에 놀라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 뜨니 불길에 휩싸인 발터가 눈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큰 화재에 현실감이 들지 않았고, 정신이 든 후엔 목이 찢어질 듯이 악을 질렀다. 은우야, 은우야. 어떡해. 그 와중에도 나는 은우의 힘에 의해 발터에서 밀쳐지는 중이었다.

 

한참이 지나 은우의 능력이 영향력을 다 하고 내 힘으로 날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시야에 발터가 보이지 않았다. 은우의 능력은 내가 알던 것보다 강했구나. 그럼 뭐해. 발터에서 나온 것은 나뿐인데…. 내 얼굴은 이미 눈물이며 콧물이며 범벅이 돼 엉망이었다. 희망을 가지려 해보아도, 오드도 사람인데 그 안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지배했다. 못된 차은우, 나쁜 차은우. 내가 어떻게 너를 희생시키고 살아가냔 말이야.

 

달빛이 길을 비춰주고, 끝없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빌어먹게도 아름다웠다. 발터에 갇혀 사는 동안 여유롭게 밤하늘을 구경한 적이 없었는데, 어릴 적 보았던 자태 그대로였다. 눈물에 눈이 무거워지며 시야가 흐릿해져도 아름다웠고, 눈을 깜빡이자 무거웠던 물방울이 뺨에 이미 붙어있는 물방울들과 섞이며 시야가 선명해져도 아름다웠다. 이 하늘을 너와 함께 보고 싶었다. 같이 날고 싶었다.

 

 

 

-

 

 

 

그날 이후로 3년이 지났다. 뉴스에선 그날에 대해 ‘작은 산불’이라고 짧게 보도했다. 작은… 산불…. 네 글자 전부 거짓말인 것을 보고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그곳에선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발터의 흔적도, 은우의 흔적도. 정말로 산불이 났다가 진압된 모양새와 같았다.

 

그 후 나는 신분을 얻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데에 성공했다. 현재는 낮에 공부를 하고 저녁엔 카페 마감 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은우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대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그 후론 능력을 사용한 적조차 없다. 이따금씩 은우가 생각나는 날이면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으나, 솔직하게 말하면 요즘은 괜찮은 날이 더 많다. 스스로가 괘씸하게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처음처럼 괴롭진 않았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어느덧 밤 11시 30분.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퇴근을 하고 나 혼자 남아 한창 마감업무를 하던 중, 입구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소리를 내었다. 친절하지 못하게, 나는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쫓으려 했다.

 

 

“죄송합니다. 마감했어요.”

“상관없어요. 커피 마시러 온 거 아니라서.”

 

 

나는 머그잔을 닦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인데 목소리가 이렇게 비슷할 수도 있을까. 잘못 들었을 지도 몰라.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꿈꾸며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헉,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들려 있던 머그잔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큰 소리를 일으켰다.

 

 

“괜찮아? 조심해.”

 

 

머그잔을 떨어트린 나 때문에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걱정했다. 아까 잠갔던 싱크대 수도꼭지 대신 내 눈에서 물이 줄줄 쏟아졌다. 사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3년 동안 무뎌졌다니. 고작 3년 동안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화상 자국이 옅게 남은 그의 얼굴을 보자 그날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죽어서나 다시 볼 줄 알았는데. 눈을 감았다 뜨면 내 자취방 침대 위에서 잠에서 깬 상태일까 봐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눈물에 흐려진 시야에 그의 얼굴만 담았다. 그는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픽 웃고는 말했다.

 

 

“오랜만이야, 빈아. 보고 싶었어.”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 목이 메어 나오지 못한 대답이 가슴에 얹혔다.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오열하는 내가 진정할 때까지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내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카운터 밖으로 뛰쳐나온 나를 그가 끌어안아주었다.

 

오늘은 3년 만에 오드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오늘 밤도 하늘이 아름다워서 다행이다. 사실 하늘이 어떤 상태여도 상관없다. 네가 별처럼 빛나고, 달처럼 밝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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